내 인생의 DJ도 PD도 작가도 나

477338No.399592022.04.18 22:01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어오면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애초에 좋아한다는건 어느 정도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득이 생각하기는 한다.
즉흥적으로 뭔갈 하는 타입은 아니다.
나에게 최고의 텀블러를 찾기 위해 3달을 할애하고
좋아하는 젤리는 한 달에 한 번 먹는다.
나머지 29일은 머릿속으로 젤리를 생각하는 시간.

음악도 그렇다.
음악 듣는걸 즐기지는 않지만
들을 음악을 고르는 머릿속의 라디오 방송국은 연중무휴.

며칠 전 점심 시간의 꽃구경 타임엔
pink martini의 splendor in the grass를 들었다.
머릿속 DJ가 작가가 써준 대로 이 곡이 클래식곡에 가사를 붙였다는 곁가지 얘기를 곁들이고
결국 추가로 조성진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들어야 했다.

오늘 퇴근길의 신청곡을 하루 종일 고르다가
오랜만에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으로 선곡.

정신놓고 있다가 선곡을 못한채 길을 나서면
발걸음 내딛지도 못해 우물쭈물하다가 아이브나 레드벨벳, 씨스타의 여름곡들이나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 노래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왠지 나 자신의 흐름을 놓치는 기분.

짧은 이동 시간이나 막간의 휴식 시간에
오롯이 내가 다듬고 골라낸 노래를 한 곡 듣는 그 순간이
꼭 나만을 위해 준비된 라디오 같아서 귀하고 달다.
라일락에 코를 바짝대고 듣는 splendor in the grass의 클라이맥스는 소박하지만 온전한 행복 그 자체다.

가끔 내 가슴에 손을 얹은채 선곡표를 들여다보면
내 심리 상태나 내가 지금 가진 고민에 대한 내 입장, 은연중에 내린 결론 같은걸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낮에 정해둔 내일 아침의 출근곡도 일종의 점사처럼 다가온다.
하루 하루 지구를 탐험하며 진화하는 ape의 마음으로 나서자 이건가 보다.
coldplay의 adventure of a lif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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