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게라 풀 수 있는 썰...

480723No.165652019.02.04 22:55

지난 주 해 떨어진 늦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누름

공동현관 비번 아파트지만 보안이 개떡 같아 종교인 잡상인 이상한 커뮤니티 등등 벼라별 방문이 종종 있는지라 웬만해선 무반응

끈질기게 눌러 인터폰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택밴가? 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집에 오는 기사님들은 요청대로 그냥 문 앞에 두고 가심...

망설이는데 또 한 번 벨을 눌러

"누구세요?"
"므라므라므랍니다"

뭐라는지는 안들리고 일단 누구세요도 했고 겉옷을 걸치는 잠깐동안도 계속 벨을 누름... 문을 열어보니 눈 앞에 무슨 증 같은 걸 들이밀며 확인할 게 있으니 협조 부탁 함, 사복경찰.

이름 마지막 글자는 잡고 있는 손가락에 가려 제대로 못봤지만 ㄱㄷㅇ 형사님으로 기억.

사진을 좀 봐달라며 폰을 내미심... 어떤 남자가 옆얼굴로 서있는 사진이었는데 옷이며 얼굴이며 특이점은 없었음(검은 롱패딩 코트 안에 카키색 얇은 구스다운이 특이점이라면 특이점이랄까, 구스다운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는 구스다운 베스트(조끼)로 보였음, 두터운 롱패딩 안에 굳이 또 구스다운을 입는다면 실내에는 오래 있지 않는 사람이다, 차로 이동하는 일도 없을 사람이다), 일단 화질이 너무 구려서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고... 눈이 찢어지고 광대가 도드라져 보이는 사각형 얼굴이었지만 진짜로 이렇게 생긴 건지 화질이 구린데다 옆을 보는 찰나에 찍혀 가로방향으로 번진 건지도 구분이 안갔음, 양 손은 청바지였던가 주머니에 꽂은 건지 허리춤을 올리고 있던 건지 수퍼맨 자세, 검은 머리에 앞머리는 일자로 보였지만 이역시 원래 그런 건지 얼굴을 돌리며 가로로 번진 건지 역시 모르겠음

제대로 보려고 피치줌하여 꼼꼼히 보다가 더블터치하여 전체로 다시 보려는데 마침 상단에 파일명이 뜸... ㅇㅎㅅ
이사람 이름일까? 파일 보내준 사람 이름일 수도 있나? 뭐...

같은 라인 저짝 할마시도 같이 온 다른 형사님과 얘기 중...
나를 발견하고는 흔치않을 상황을 함께 맞이한 동지애라도 느꼈는지 눈과 고개를 아예 나한테 꽂아놓고 눈빛으로 '어마마? 그치그치! 네 마리~ 네 마리~' 라고 말하는 듯한 호들갑...
아파트 공고에 그러지 말라고 써붙이기까지했지만 끝집 혜택이라도 되는 양 아주 복도에다 온갖 살림살이 다 꺼내놓고 여름엔 현관을 늘 열고 살아 오밤중까지 소음과 함께 온갖 음식냄새와 주방열기 복도로 다 터져나와 이 찜통더위를 함께해요 민폐옹이시라 나또한 눈빛으로 '이르은 츠은바칸 여편네가트니라구' 싸늘하게 화답해줌, 아침마다 애기들은 왜그렇게 패대는지 곡소리가 쩌렁쩌렁

"이사람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요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네 근데 화질이 너무 ㅎ;; 사진 이것 밖에 없나요?"
(하며 왼쪽으로 스크롤하여 오른쪽으로 들어오는 사진을 스쳐봤는데 무슨 공문서였음... 근데 형사님이 당황하셨는지 폰을 치워서 한 글자도 못 봄)
"네 비슷한 사람이라도 보신 적 없으세요?"
"네... 못 본 사람이에요."
"여기 누구랑 사십니까?"
"저랑 남편이요."
"아, 남편 분이랑 두 분이서만 사십니까?"
"네"
"혹시... 남편... 분 아니십니까?
"아닌데요 ㅎ"
"남편분... 어떻게 생기ㅅ..."
(마침 옛날에 같이 찍은 사진을 문짝에 붙여 둠)
"아, 저희 남편 이렇게 생겼어요 ㅎ"
"아, 남편분 아니시구나 ㅎ"
"네, 저... 근데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말 안해줄 게 뻔했음)
"아,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요... 말씀해주시면 안되는 건가요?"
"네 거기까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 ...
"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용?ㅋ
"... ..."
"(슈렉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 발사...)"
"(실패란다.)"

할마시와 있던 형사님과 나와 있던 형사님 가운데로 백팩 맨 형사가 등장하고 세 형사가 모임, 백팩 형사는 다른 사람 없는 집을 살펴보고 왔나 봄
그리고 백팩 형사가 작게 하는 말이, 다음에 또 올 때 헷갈릴 수 있으니 집마다 표시를 해두자, 뭐 그런 얘기 등등 셋이서 나즈막히 므라므라 하더니 갔고...

아무튼 그 사진 속의 남자가 우리 층에 사는 걸로 추정된다고.

형사들이 떠나고도 나는 혹시 더 주워들을 소리라도 있을까 문을 닫지 못하고 할마시는 반가운지 저짝 끝에서 여기까지 굳이 또 와서는 무슨 일이래? (말 안해주는 거 다 들었으면서) 무슨 일인지 몰라요? 뭔 일이래... 암튼 뭐 같은 말을 여러 어체로 바꿔 반복하다 돌아감.

그런데 공포가 엄습한 건 몇 시간 후...
혹시나해서 남편한테 전화해서 이따 퇴근할 때 공동현관 대신 열어주길 기다리는 듯한 사람 있으면 편의점이나 한 번 들렀다 오고 수상한 사람이랑 같이 엘베타서 같은 층에서 내리거든 뭐 깜빡한 척하며 다시 내려갔다 오라고...

그러고나서 갑자기 팍 켜진 전구처럼 드는 기억이... 나는 그 남자를 보았다. 아니 본 것 같다?
내가 여기서 지낸지 곧 1년이 돼가는데... 백수인지라 줄곧 집에만 있고 나다녀도 대낮인지라 같은 층 수 사정은 대충 앎, 게다가 마침 나는야 자타공인 관찰쟁이...

6호
아까 그 할마시댁.
가장은 본 적 없지만 아까 말한 여름민폐댁이라 목소리는 들어봄
할마시, 가장, 애들 엄마, 남아 1, 여자 1.
사진 속 남자는 가장의 나이보다 젋다.

5호
기러기 아빠인지 아저씨 혼자 삶, 얼굴 몇 번 본 적 있음
복도 센서등이 켜질 때 우리집 복도쪽 방 창문 넘어로 아저씨랑 눈 마주친 적 몇 번 있음, 뻘쭘.
퇴근시간이 깨나 일정하며 그 아저씨가 집에 없는 한 집에 불도 켜지지 않고 고요함
한 번씩 부인인지 내연녀인지는 모르겠다만 어떤 시끄러운 줌마가 와서 자고 감,
줌마는 오면 꼭 복도쪽 창을 열어두고 겁나 떠듦. 너무 시끄러운데 뭐라는지는 못 알아듣겠어서 중국인인가 생각해본 적 있음
주로 주말에 오는 걸 보면 내연녀보다는 부인이라고 생각됨,
아저씨가 없는 집에서 줌마의 인기척을 느낀 건 한 번 뿐.
근데 아저씨도 아줌마도 본지는 꽤 됨

4호
우리집

3호
엄마와 딸.
전엔 택배 기사님이 택배를 양수함에 넣어두셨는데 우리집 양수함은 좁아서 꼭 5호나 3호 양수함에다 넣어두기때문에 택배 꺼내려다 마주친 적 있음.
뭘 샀는지 엄청 커다란 박스를 낑낑대며 꺼내길래 도와준 적 있음
후로도 몇 번 마주치고 택배 전달해준 적 있지만 당췌 먼저 인사하진 않지만 애가 어려 머쓱해서 그런가싶어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해보았으나 그후로도 마주치면 쌩-
딱 한 번 엘베타려하니 엄마랑 같이 서 있어서 엄마 본 적 있음, 역시 쌩-

2호
엄빠랑 애기삶
방 안에 무슨 옵션을 추가하는지 공사하느라 문 활딱 열어둔 적 있음
인부와 함께 뒤돌아보는 아빠 볾
엘베 내리자마자 보이는 가운데 집이라 문 좀만 열려도 안이 다 보이고 복도쪽 창은 옷방으로 쓰는지 늘 불 켜있어서 설치된 행거에 옷 다닥다닥 걸려있는 그림자 보임
아기엄마 이쁘장하고 눈빛이 상냥함

1호
단 한 번도 사람은 커녕 인기척도 느낀 적 없음
늘 불 꺼져있음
여름에 환기때문에 1호 앞 창문을 열고 닫으려 하루에 한 두 번꼴로 갔었는데 장마철에 비가 쏟아져 들어와 바닥에 물이 고여도 당췌 알아서 닫지를 않아 단순한 사람이 사나보다 했음

언젠가 사람이 많이 없을 시간인 대낮에 1층에서 엘베를 타고 올라와 문이 열리는 순간 문 앞에 웬 처음 보는 남자가 바로 들어오려해 놀란 적이 있음
앨베 문을 두고 타인과 마주치는 일은 1층에서나 흔한 일이라 조용한 대낮에 나는 무척 놀라 나도 모르게

"아깜짝이야어여기00층아닌가1층인줄알았네"

라고 방언터짐

이게 기억에 남는 건 남자가 나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보여서였음
단순히 나처럼 예상치못하게 사람을 마주쳐서 놀란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가 나와 마주치고 바로 또 숙이고 아 지금 날 남이 보면 안되는데 같은 느낌을 지금에 와서야가 아니라 바로 그날 그 순간에 내가 느꼈고 그 표정이 기억에 남아 누굴까 혼자 잠깐 생각해보았었음
롱패딩에 뭐 사진과 비슷한 옷차림이었지만 그자체가 평범한 옷차림이어서...
가끔 젊은 사람이 배달할 것 같지 않는 옷차림으로 배달하는 걸 봐서 배달하는 사람인가... 도 생각해봤고 아 저사람이 1호 사람인가도 생각해봄

며칠 전 나가는 길에 1호 앞에 가서 계량기를 봄...
전혀 돌지를 않음... 사람이 안사나...

지하로 내려와 1호의 우편함을 보는 순간 유혹을 떨치지 못해 잠깐 서서 고민함... 남의 우편함 뒤지면 불법인가, 이거 뒤져보는 거 CCTV에 찍히면 나도 의심받는 거 아닌가... 어쨌든 나는 평소 법 없이도 살 준법시민이니 잡혀도 억울하게 엮이지는 않겠지... 보자.

봉투에 담긴 고지서 두어개와 관리비 고지서... 관리비 고지서를 보자.
밀린 관리비가 55만 4천 얼마... 헐?!
내역을 보니 전기, 가스, 급탕... 진짜 안씀... 거의 기본수준.
계산을 대충 해보면 적게는 6개월에서 내가 1호 사람을 단 한 번도 마주치거나 불 켜진 걸 본 적이 없는 걸로 봐선 1년 이상... 근데 고지서 사람 이름은 ㅇㅎㅅ이 아닌 ㄱㄴㅈ.
그리고 이상한 점은 주기적으로 와서 우편물을 가져간다는 점.
왜냐하면 관리비를 이렇게나 미뤘다면 관리비 고지서가 달달이 쌓여있어야하는데 딱 이번달 관리비 고지서만 있었다는 점.
쌓은 우편물을 누가 알아서 치워주는 것도 아니고... 그건 버리는 거니까 안될 일.

일단은 여기까지만 알아낸 사실이다.
추측으론 1호에 사는 ㄱㄴㅈ의 집에 ㅇㅎㅅ이 얹혀 사는 인물이 아닐까... 정도.
이 마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검색이 되는 것도 아니고,
ㅇㅎㅅ이가 딴 데네서 범죄를 저지른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남편은 이사람 아니야? 라면서 원룸 들어가 남녀한테 캄부림해 여자 죽이고 남자 중상입힌 후 도주한 A 사진 카톡으로 보내주고... ㄷㄷㄷ
(A는 얼마 전 타 지역에서 검거 직전 자해로 자살함)
요즘엔 초인종도, 나다니기도 무섭다.
나는 요즘 하루하루가 무서브당흐어으어으앙...
남편도 퇴근이 늦어서 만날 혼자 있는데ㅠㅠ
좋아요 0 0
이전17461747174817491750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