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싸이코패스인 것 같아요.

751977No.233632019.12.07 15:40

저는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 자신밖에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 자신만 아끼는 사람이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엔 등장인물에 감정이입도 잘 하고, 쉽게 설레고 울면서 정서적인 충만감을 느끼거든요.
어려운 이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생겨 돕고 싶어하고, 저와 상관없는 사람일지라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저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도 웬만하면 복수심이 생기지 않아요. 그냥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만 슬픔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안타까움을 넘어서 슬픔을 느끼는 포인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연인과 헤어지면 상실감에 울지만, 막상 연인이 아프거나 할 때에는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짜증스러운 마음이 주되거든요. 당연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대가 서운할 것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표내지 않고 성심성의껏 돌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사실 이렇게 아플 거면 내 곁에 없었으면 할 때도 있어요.
부모님이나 애인이나 친구가 곤란한 일을 겪거나 힘들어하면 도와주려고 노력하는데, 제가 도울 수 없는 일이면(예를들어 병원에 입원해서 중대한 수술을 해야 한다든지) 그리 염려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아요.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상대가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전제 하에 그냥 내일 당장부터 평생 안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쉽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은 느낌? 부모님이나 10년을 안고 자며 길러온 반려동물을 포함해서요...

가끔 상상을 하거든요.
평생의 반려자가 죽으면 어떤 느낌일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요.
가끔은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어요. 상실감때문에 울 수는 있겠는데 그건 그 사람들을 사랑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자기연민에서 흘리는 눈물일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들면 제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지는데... 마음이 제 의지되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난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친구가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울 때에도 저는 그 슬픔이 와닿지 않아서 적절히 공감과 위로를 해주지 못했고,
다른 친구가 부모님의 암수술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심적으로 힘들어 할 때에도 저는 묘한 이질감만 느꼈어요. 머리로는 걱정되는 상황인 걸 알겠는데 , 별로 걱정이 안 되고...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려고 해도 속상한 마음만 들고 슬픔이나 괴로움은 별로 없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그냥 저는 남을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친구들을 아끼고 서로 좋은 것을 나누며 제가 가진 것을 양보하고 힘든 상황에서 돕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제가 주변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싸이코패스인 건지 잘 모르겠어요. 당연히 티는 내지 않을 건데... 제가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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